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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7월 뉴스레터> 기획연재 - 나이 들수록 식물 공부가 필요한 10가지 이유 - 이용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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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식물 공부가 필요한 10가지 이유
이용순박사
‘행복은 도착지가 아니라, 여행하는 방식이다.’ 마거릿 리 런벡의 말입니다. 행복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하지만 정작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문득 돌아보면 나이를 먹고 사회와는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의 직업은 식물 조사입니다. 이 일을 하기 전부터 야생화 동호회 분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젊은 분들은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대부분은 나이가 많고 특히 은퇴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은퇴한 후 무료함을 달래려고 찾다가 만난 취미가 식물 공부입니다. 남녀노소를 떠나 식물 공부는 삶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특히, 나이가 드신 분들에겐 다른 취미보다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무궁무진하지만 10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1.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식물의 성장과 계절에 따른 변화는 인간의 삶과 닮아 있어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줍니다. 더불어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정서적 안정을 줍니다. 은퇴 후 외로움이나 공허함을 달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에드워드 오즈번 윌슨이 얘기한 바이오필리아(Biophilia)를 채우게 도와줍니다. 바이오필리아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선천적인 애착을 얘기하며 이것의 충족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2. 관찰력과 집중력을 유지하게 도와준다.
식물은 한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식물도 감정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알아채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찰이 필요합니다. 식물 공부는 자라는 환경부터 수형, 수피, 잎, 꽃, 열매, 종자 등 다양한 관찰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이는 나이 들어 흐트러지기 쉬운 주의력과 인지 능력을 단련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 됩니다.
3. 건강한 야외 활동의 기회를 제공한다.
식물 공부는 탐사, 채집, 사진 촬영 등으로 자연스럽게 야외로 나가게 만들며, 이는 노년기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합니다. 식물 공부에 마라톤을 완주할 만큼의 체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두 발로 걸을 수만 있으면 됩니다. 매우 큰 장점으로 식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자연과 멀다는 도시의 아파트 화단에도 많은 종의 식물이 삽니다. 식물 공부의 기본은 야외 관찰이기 때문에 자연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으로 나가 바람을 맞고, 햇빛을 쐬고, 돌아다닙니다. 햇빛과 산책은 우울증 예방과 수면의 질 개선에도 도움이 됩니다.
4. 끝없는 배움의 세계로 인도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4,600여 종의 식물이 있습니다(국가생물종목록 기준). 이것이 얼마나 많은 수인지는 유럽과 비교하면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의 국가별로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보다 식물 종 수가 많은 나라는 프랑스, 스페인 정도입니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종 수가 적고 다양성 면에서 단순합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 대비 매우 높은 다양성을 가진 나라입니다. 또한, 식물은 분류학, 생태학, 민속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어 있어 공부의 폭이 넓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식물은 좋은 학습 소재입니다.
5.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식물을 안다는 것은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식물에는 자원으로의 가치, 역사, 문화적 가치, 환경적 가치 등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식물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식물 전문가가 쓴 책도 있지만 비전문가가 식물을 공부해서 펴낸 책들도 많습니다. 식물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서 가능한 일입니다.
[ 2023년 6월 9일 치악산 비로봉의 꽃개회나무 ]
6. 삶과 죽음을 느끼게 해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성장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고, 늙고 죽습니다. 식물은 이 과정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사람보다 오래 사는 식물도 많지만 어떤 식물은 단 몇 주 만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퍼트리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겨울을 버티는 나무를 보면서 시를 짓고 노래하기도 합니다. 식물의 이런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잘 사는 법, 잘 늙고 잘 떠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7. 여행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낯선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 지역의 식생을 이해하면 여행의 목적이 더 풍부해집니다. 강원도 영월, 평창, 제천 지역은 석회암지대입니다. 이곳에는 호석회식물이 많이 살아서 다른 지역과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제주도는 기후, 화산섬이라는 지형, 현무암이라는 지질, 한라산이라는 높은 산, 오름, 곶자왈 등으로 육지와는 다른 식생을 보여줍니다. 울릉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물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 지역의 식물을 알면 그 지역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8. 여행 목적지가 다양해진다.
일반 관광지 외에도 보고자 하는 식물에 따라서 목적지가 다양해집니다. 한 종의 꽃을 보기 위해서 바닷가, 높은 산, 계곡, 습지를 다녀야 하기도 하고, 길이 없는 곳이나 덤불을 헤치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것이 힘들면 전국의 식물원, 수목원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식물원, 수목원도 훌륭한 여행지가 될 수 있습니다. '식물을 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은 나이가 들수록 삶의 의미와 목적을 유지하게 해주며, 생태관광이나 느린 여행(slow travel)과도 잘 부합됩니다.
9. 현지 문화를 식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식물은 그 지역의 음식, 약초, 전통, 민속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높고 깊은 산이 있는 지역에 가면 산채비빔밥 식당이 꼭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나물의 종류가 조금씩 다릅니다. 바닷가에 가면 해산물로 이루어진 반찬이 나옵니다. 지역마다 민간요법이 다르고, 제사의 상차림 음식이 다릅니다. 식물을 안다는 것은 현지의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10. 사회관계망을 넓힐 수 있다.
은퇴 후 사회관계를 맺는 데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직장 생활할 때 높은 지위에서 많은 편의를 누렸던 분들에서 두드러집니다. 은퇴하고 나면 직장에서 누렸던 지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허탈감, 상실감이 크게 작용합니다. 그런 시간이 늘어나다 보면 급격하게 늙게 됩니다. 식물을 공부하면 이런 박탈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식물 관련 모임, 동호회 활동도 좋고, 블로그 등의 SNS를 통해 맘에 맞는 분들과 소통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식물을 공부해야 하는 10가지 이유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심리학자인 최인철 교수는 <굿라이프>에서 일상 활동을 재미와 의미의 두 축으로 나누어서 행복을 측정했습니다. 행복 칼로리표라는 표입니다. 그 표를 보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가장 오른쪽 위에 ‘여행’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식물 공부는 그 여행이 가지는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모르는 식물을 알게 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먹고, 수다 떨고, 운동하게 됩니다. 호기심과 관찰력을 키우고, 자연의 품에서 호흡하며, 사회적 관계의 확장이 이루어집니다. 식물 공부는 재미와 의미가 결합한 최고의 행복 결정판이자 종합 선물 세트입니다.
가수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이제 식물 공부로 출발해 보시죠.

(이용순 박사) 작가소개
건축공학을 전공하여 건축설계 업무로 사회생활 시작하였다. 이후 조경시설물 설계·시공, 생태복원 설계·시공 업무를 수행하였고 2010년 전국자연환경조사 전문인력 양성과정 교육(2년, 식물상분야)을 이수하면서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2013년부터 환경영향평가 관련 식물상 조사, 전국자연환경조사 식물상 조사, 국립공원공단의 자연자원조사(식물상) 조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북한산국립공원의 관속식물상 조사연구’로 석사학위(공주대학교)를 취득하였고, 동대학교 생물교육학과에서 식물분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자연환경관리기술사, 조경산업기사, 건축기사, 저서로는 생물분류기사(식물) 실기(2021, 이비락), 겨울에 만난 나무(2020, 풀빛누리), 번역서로는 식물학자의 사전(2022, 이비락)이 있다.
식물공부에 관심이 있다면 이용순 박사님이 운영 중인 ‘그루터기의 작업실’ 블로그와 채널에 꼭 방문하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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